카테고리 없음

다시 찾은 회암사지박물관

큰종 2016. 10. 16. 20:41

 

조선시대는 유교사회를 지향했지만 회암사는 왕실의 적극적 후원을 받은 조선최대의 왕실사찰이었단다.

지금은 비록 찬란했던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절터에 남아있는 유구와 유물들과 문헌기록으로 당시 회암사의 위상을 상상해보고

회암사지박물관을 만든 것 같다.

이곳엔 여러 번 와 봐서 이번엔 궁궐에서만 볼 수 있는 잡상과

소장품에서 용두, 토수, 보주, 기와, 수막새 등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잡상

잡상은 기와지붕의 추녀마루 위에 장식으로 놓는 여러 동물의 상인데,

이사지에서 특이한 것은 궁궐에서만 볼 수 있는 잡상이 나와서

이곳은 왕실사찰임이었음을 확인 해 주는 것이다.

 

화암사지 출토 청기와

청기와는 명나라에서 유행한 것으로 평가와에 유약을 발라 구운 청색기와이다.

왕실과 권위와 관련이 있어 궁궐이나 왕실의 원찰 일부 건물에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용두

용머리 모양의 장식 기와이다. 용두는 내림마루 기와가 아래로 미끄러져 흘어내리는 것을 막는 기능과 함께 길상과 벽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용두는 합각 내림마루 끝에 부착된 용머리 모양의 장식 기와를 말한다. 용마루 양단의 용이 용마루를 삼키는 탄척(呑脊) 형식인 것과 달리 얼굴이 정면 허공을 향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보주 -

연꽃봉오리 모양의 화강암보주이다.

보주는 법당의 가장 높은 용마루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가장 높은 곳의 중앙'은 실로 막중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일반적인 장식물이 한 영역을 꾸미는 기능을 하는 것과 달리 이 위치의 장식물은 건물 전체를 장엄하고 상징화하는 효력을 발휘한다. 보주는 '마니주(摩尼珠)', '여의주', 또는 '여의보주'라고도 불린다

회암사지 출토 토수(吐首)

회암사지의 중심건물인 보광전터에서 발굴된 것이다.

토수(吐首)는 목조 건물 네 귀의 추녀 끝에 끼워 감싸는 용두, 또는 귀면형 장식 기와를 말한다.

사래 끝이 허공을 향해 치켜 올라가 있어서 비바람에 목재가 부식될 염려가 있으므로 이를 막기 위해서 내부가 비어있는

토수를 씌우는 것이다.

팔뚝에 끼는 토시[吐手]와 비슷하다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으나 표면의 조각상은 용을 닮았다.

 

 

수키와 두 암키와 사이에 생기는 틈새 위에 엎어놓아 기와, 원통을 세로로 2등분한 것 같다.

원와(圓瓦)·부와(父瓦)·남와(男瓦)·웅와(雄瓦)라고 부른다.

암키와(女瓦) 지붕에 까는 넙적한 형태의 기와

 

수막새

수키와의 끝에 드림새(막새부)를 접합시킨 무늬가 새겨져 있는 기와로 대개 원형이다.

 암막새

암키와의 끝에 약간 굽은 듯한 네모 또는 반달형의 드림새를 붙여 만든 것을 암막새라고 한다.

목조기와집의 추녀끝인 기왓골의 맨 끝에 얹어져 흘러내리는 눈과 빗물의 낙수를 돕고 있다.

 

 

현재의 화암사지

 

지공선사, 나옹선사, 무학대사의 부도는 현재의 회암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