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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 많은 화진포

큰종 2016. 11. 24. 20:27

오래간만에 강원도 고성의 화진포를 찾았다.

이곳에는 전망과 경치가 뛰어난 김일성 별장이라 불리는 화진포의 성을 비롯해서

이승만대통령별장, 이기붕부통령별장, 해양박물관, 생태박물관, 해수욕장, 고인돌공원,

금구도 등 볼거리도 많다.

날씨 좋은 날에 하루 종일 거닐면서 관람도하고 숲에서 힐링하기 좋은 곳이다.

그런데 오늘은 화진포의 성, 이기붕부통령별장 등 몇 곳만 둘러보는 아쉬움을 남기고

강원도의 또하나 자연의 석호 송지호를 찾기로 했다.


화진포의 성(김일성 별장)

김일성 별장으로 불린 까닭은?

6.25 전쟁이 발발하기 전 1948년부터 김일성 가족들은 경관이 뛰어난 화진포의 성을

휴양지 숙소로 이용해서 김일성 별장이라 불렸다.




김일성별장으로 알려진 강원도 고성의 화진포의 성은 소나무숲과 아름다운해변과 어우러진 성 같아....

화진포의 성 주변의 소나무 숲




남북한의 말 비교(남북한 언어가 분단이후 이질화가 심화된 것은 슬픈 일이다.)

화진포의 성(김일성 별장)에서 본 화진포해변

화진포의 성(김일성 별장)에서 본 화진포해변

화진포의 전설

지금 호수의 자리에 옛날에는 이화진이라는 성질이 고약한 시아버지와 착한 며느리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건봉사 스님이 찾아와 “시주 좀 하십시오.”하니 구두쇠 노인은 좁쌀 한 홉을 주었다. 스님은 “고맙습니다.”하고 돌아갔고,

그 후 3년이 지나 시주를 청하자 이번엔 좁쌀 한 숫가락을 주었다. 그래도 스님은 역시 “고맙습니다.”하면서 집안의 평안을 축원하였다.

3년 후 스님이 또 시주를 부탁하니 노인은 외양간에서 소똥 한 삽을 가져와서 “이거나 가져가라” 하니

이번에도 스님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이 광경을 본 며느리는 고약한 시아버지의 행동이 미안해서 쌀 몇 되박을 들고 스님을 찾아 나섰으나 스님의 모습은 사라지고,

이상한 느낌이 있어 뒤를 돌아보니 자기가 살던 집과 텃밭은 없어지고 시퍼런 호수로 변해 버렸다.

그 후 이 마을엔 큰 홍수와 흉년에 전염병가지 돌아, 이 마을 사람들은 착한며느리의 묘를 만들어 주고

서낭굿을 해준 뒤로는 농사도 잘되고 전염병도 사라졌다는 전설이 있다.

그 후 시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화진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바람이 자고 물결이 잔잔할 때는 물속에 집과 담이 보인다고 하고 또 땅 밑으로 동해와 연결된다고 전해진단다.



화진포 소나무 숲 삼림욕장

다음에 이곳에 오면 ‘소나무숲길’ ‘명상숲길’ ‘치유숲길’을 산책하면서 아름다움을 가슴에 간직해야겠다


화진포 호수는

호숫가에 해당화가 예쁘게 피어 붙여진 이름으로 둘레는 16kmfh 동해안의 최대의 자연 호수다.

고성에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가 두 곳 있다.

송지호와 동해안 최대의 화진포호가 그렇다.

동해안 최대의 자연호수이며 넓은 갈대밭 위에 수천 마리의 철새와 고니가 날아들고 울창한 송림으로 둘러싸여 주변경관이 빼어나

옛 부터 주변에 유명한 별장들이 많았던 곳으로 지금도 이승만 전 대통령별장과 이기붕 전부통령별장,

호진포의 성(북한 김일성 별장)이 안보전시관으로 남아있다.


석호(潟湖)란?

모래, 개펄 따위가 만의 입구를 막아 바다와 분리되어 생긴 호수를 말한다.

화진포, 송지호, 강릉 경포 등



금구도를 상징한 거북

오른쪽에 보이는 섬은 금구도이다. 신라시대에 수군기지로 사용하며 해안을 지키던 곳이다.

섬의 모습이 거북모양이라  '거북섬'이라고도 불린다.


소나무 숲에 자리한 부통령 이기붕별장

이 건물은 1920년대에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건축되어 현재까지 보존된 건물로서

해방이후에 북한 공산당 간부 휴양소로 사용되어오다가

휴전후 부통령이었던 이기붕부통령의 부인 박마리아가 개인별장으로 사용하여왔다고 하며

1999년7월 전시관으로 개보수하여 현재까지 운영 중이라 한다.


이기붕부통령의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