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공주 전설이 깃든 궁남지는 연꽃축제가 한창인 7월이 볼거리가 푸짐한데......
그래도 5월의 궁남지가 보고파서 찾았다.
축제기간엔 많은 관광객으로 주차도 복잡하고 포룡정에 가기도 힘든데
복잡하지 않고 고즈넉해 여유롭게 궁남지를 볼 수 있었다.
궁남지는 신라 선화공주와 결혼한 무왕의 서동요 전설이 깃든 곳이다.
백제 무왕 때 만든 인공연못으로 물을 20여리 밖에서 끌어다 채웠다한다.
지금은 주변에 연꽃단지를 만들어 사계절 아름다운 관광지로 ‘서동연꽃축제’ 및 구드레 국화전시가 있다.
어느 호텔에서 궁남지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사진을 게시한 것을 퍽 인상적으로 보았는데
이곳에 올 때마다 사계의 포룡정을 찍고 싶은 생각이 난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
백제시대 이궁터로 알려진 궁남지 일대에는 아명(兒名)을 서동(薯童)이라 했던 무왕의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사비시대에 왕궁 남쪽 못 가에는 궁궐에서 나와 혼자 사는 여인이 궁남지의 용과 교통하여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바로 백제 제30대 왕인 무왕 장(璋)이다."
그의 어머니가 용과 교통하여 아들을 낳았다고 하였으니 아마도 그의 아버지는 왕이거나 태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궁궐 밖의 생활이 궁핍하였으므로 생계유지를 위해 그는 마를 캐다 팔았다.
그래서 그의 아명이 서동이 되었던 것이다.
서동의 어머니는 가난에도 불구하고 그를 정성으로 키웠다.
그는 기골이 장대하고 효성이 지극한 장부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궁중에서 한 노신이 찾아와 왕의 밀명을 전하였는데 신라의 서라벌에 잠입하여 국정을 탐지하라는 것이었다.
서동은 기꺼이 받아들여 마를 파는 상인으로 위장하여 신라에 잠입, 탐지활동을 충실히 수행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신라 제26대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와 마주치게 되었다.
이후 두 사람의 만남이 잦아지면서 사랑이 싹텄다.
그러나 서로는 국적과 신분이 달라 맺어질 수 없는 사이임을 알았다.
그러나 헤어질 수 없었던 두 사람은 지혜를 짜내 서동요를 만들어 퍼트리기로 했다.
서동은 서라벌의 아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서 마를 나누어주며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시집가서 서동 도련님을 밤이면 몰래 안고 간다."는 노래였다.
이 노래는 아이들의 입을 통해 온 나라에 퍼져 나갔다.
결국 대궐에까지 알려지게 되어 오해를 받게 된 선화공주는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를 미리 알고 있던 서동이 선화공주를 백제로 데려와 행복하게 살았다는 사랑이야기이다.
-부여군청에서-
구드레선착장
고란사를 유람선으로 간다기에 선착장을 찾으니 손님오길 기다려야 해서
강가에 물 반 고기 반 같이 많이 모인 ‘눈치’ 서식지만 구경하고 궁남지를 향했다.
점심은 아들과 며느리가 인터넷 검색에서 구드레나루 인근의 ‘장원막국수’를 선정했다.
비포장으로 들어가 의아했는데 역시 늦은 점심인데도 손님들이 많이 있다.
편육과 막국수는 소문대로 담백하고 맛이 좋았다.
구드레선착장 '눈치'
강냉이를 매우 좋아 한단다. 관광객들의 먹이 주기에 여기에 모여서 서식지가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