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듣던 소광리 금강소나무 군락지는 36번 국도에서 협곡 같은 산길을 가도 가도 나오질 않는다.
구불구불하고 엉망인 도로 사정 때문에 더욱 더 멀게만 느껴진다.
소광리 금강소나무숲은 우리 민족의 기상과 절개를 상징하는 금강소나무의 최대 군락지란다.
깊은 산속에 더욱이 산림보호를 위해 통제를 해서인지 울창한 금강소나무 숲과 수리취떡을 만들던 수리취, 솜방망이꽃, 취나물 등을 쉽게 볼 수 있는 원시림이라 할 수 있었다. 산책하는 사이에 솔숲의 독특한 향기는 여행의 피로를 깨끗이 씻어줘 상쾌한 기분을 만들어 줬다. 피톤치드와 음이온 풍부해서인 것 같았다.
금강소나무 크기는 숭례문 복원에 재목을 가져온 준경묘의 금강소나무들 보다는 좀 작아 보였으나
수령이 150~520년 정도로 추정되는 거대한 금강소나무 수만 그루가 자라고 있는 군락지이며, 또 150년 후를 내다보며 1,111본을 심었다니 많은 기대가 된다.
530년생 금강소나무 보호수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에서 제일 나이 많은 약 530년된 소나무로 조선 9대 성종시대에 싹이 튼 것으로 추측된단다,
이 숲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어 보호수로 지정 관리하고 있단다.
소광리 금강소나무 생태경영림 입구
울창한 금강소나무 숲
금강소나무는 나무줄기가 붉어서 ‘적송(赤松)’
또는 옛날에 임금의 관을 만드는 데 쓰던 질이 좋은 소나무로 황장목(黃腸木)이라고도 한다
금강소나무(적송, 황장목이라고도 함)
금강소나무 전시실
일반소나무와 금강소나무의 비교
금강소나무는 줄기가 곧고 목질이 단단하여 조선시대 궁궐용 목재나 왕실의 목관을 만드는 데 사용하였다. 황장목이 금강송이다. 황장이란 소나무의 붉고 누런 속 부분인 심재부를 가리킨다. 금강소나무의 심재부는 일반 소나무에 비해 월등히 넓은데다 단단해 잘 썩지 않는다. 자라는 속도가 느려 나이테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촘촘하다. 따라서 같은 굵기의 소나무라도 금강송과 일반소나무는 수령이 서너 배까지 차이가 난다.
--디지털울진문화대전에서-
금강소나무
식수한 금강소나무
수리취
황장봉계표석(黃腸封界標石)
조선 왕실에서 금강소나무(황장목)의 보호를 위해 벌목을 금지하고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경계와 관리 책임자를 알려주었던 표석을 바위에 새겨 놓은 것이다.
황장봉계표석이 아직도 남아 있어 탐방객들로 하여금 우리나라 산림역사의 흔적을 볼 수 있게 하였다.
황장봉계표석의 왼쪽 면에는 ‘산직명길(山直命吉)’이라 기록되어 있고,
오른쪽 면에는 ‘황장봉계지명생달현안일왕산대리당성사회(黃腸封界地名生達峴安一王山大里堂城四回)’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표석의 내용은 황장목의 봉계 지역을 생달현(生達峴)·안일왕산(安一王山)·대리(大里)·당성(堂城)
네 지역으로 하고, 이 지역을 명길(命吉)이라는 산지기로 하여금 관리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디지털울진문화대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