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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암사지박물관, 화암사 탐방

큰종 2014. 9. 15. 15:46

경기도 양주 회암사지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도 이곳은 고려말에서 조선 초기의 최대 왕실사찰이다.

지금은 사지만 남아있지만 1만여 평에 달하는 절터로서 1997년부터 발굴하여 출토된 유물로 현대식 멋진

‘화암사지박물관’을 만들어 그 옛날에 화려했던 화암사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게 했다.

5년 전에만 해도 컨테이너 같은 건물에 초라한 전시관이었는데.....

 

대표적인 소장품은 토수와 용두, 잡상 등의 기와류와 왕실용 도자기류, 청동금탁, 회암사불화 등으로

조선시대 왕실문화와 불교미술문화 이해에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본다.

 

이사지에서 특이한 것은 궁궐에서만 볼 수 있는 잡상이다

잡상은 기와지붕의 추녀마루 위에 장식으로 놓는 여러 동물의 상인데 궁궐에서만 볼 수 있는 곳으로

이곳은 왕실사찰임이었음을 확인 해 주는 것이다.

 

윤장대(불교에서 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돌릴 수 있게 만든 것)

글자를 모르거나 불경을 읽을 시간이 없는 중생들을 위하여 만들어졌는데

윤장대를 한 번 돌리면 불경을 한 번 읽은 것과 같단다.

화암사지박물관

 

출토 소조품

 

청동금탁

청동금탁은 절의 처마에 달린 풍경인데 이것은 보통과 달리

 금탁 상단부에 ‘왕사묘엄존자(王師妙嚴尊者·무학대사)’와 ‘朝鮮國王(이성계)’ ‘王顯妃(이성계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

‘世子(방석)’ 등의 명문이 새겨 있었다

화암사지 전경

일반사찰과는 다르게 궁궐과 유사하며 왕실에서 제한적으로 사용한 도자기류 기와 등이 출토 되었다.

화암사지 복원 추정도

일반사찰과는 다르게 궁궐과 유사한 건축 양식이란다.

서승당

스님들의 선방으로 내부엔 특이한 구조의 구들들이 설치되었단다.

 

화암사의 명문 백자

화암사 도자기

 

화지석

북쪽 기단에서 출토된 화지석인데 지석이란 죽은 사람의 인적사항을 적은 것이다.

이것은 '정경부인 풍산홍씨지묘'

 

봉황문 기와

용문 기와

불상

 

잡상은 궁궐의 전각과 문루의 추녀마루 위에 놓은 10신상(神像)을 일러 잡상이라 하는데

이는 소설 ≪서유기 西遊記≫에 나오는 인물 및 토신(土神)을 형상화하여 벌여놓아 살(煞)을 막기 위함이라 한다.

용두

화암사지박물관

당간지주

전망대에서 본 아래쪽 화암사지,

 사지는 모두 만여평이란다.

화암사 복원 추정도

승탑

화암사 및 부도 안내도

현재의 화암사

조선 초기의 화암사가 아니라 무학대사, 지공선사, 나옹선사의 부도를 가까이에서 관리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알고 있다.

무학대사 부도

태조 이성계는 스승인 무학대사를 만나기 위해 공식적으로 이곳을 4차례나 방문하였단다.

무학대사부도가 있는 근처엔 기가 많은 곳이라 문화해설사는 이곳에서 오래 쉬기를 권하였다.

지공선사 부도 및 석등

인도의 승려로 나옹선사, 무학대사 등의 스승이다. 

여기에 지공선사라함은 전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만 65세 이상 년령의 노인들을 일컫는 신조어가 아닙니다.

나옹선사 부도

나옹선사는 고려 후기의 승려로 본명은 혜근이다. 오대산 상두암에 머물렀고,
공민왕에게 설법을 하였다. 회암사의 주지가 된 후 절을 중창하였고,
우왕 2년(1376)에 입적하였다.

무학대사의 스승이기도 하다.

대주교통으로 찾아가기

화암사지박물관 : 1호선 덕정역에서 하차하여 역 앞에서 버스78번 승차 15분 후 회암사지박물관 정류장에서 하차

화암사지 : 박물관에서 보인다.

화암사와 무학대사, 지공선사, 나옹선사 부도 있는 곳은 화암사지전망대 옆길 따라 천보산 쪽으로 15분 정도 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