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1960년대의 시골 정취를....수필 ‘느티나무의 추억’ -전권식-

큰종 2022. 5. 31. 13:25

1960년대 시골 느티나무 아래에 얽힌 정취를 리얼하게 느낄 수 있는 수필이 있어 올려 봅니다.

 

                                                                                        느티나무의 추억                                                               

 우리나라 어디든 오래된 느티나무가 한두 그루는 동네에 자리하고 있을 겁니다. 고향 왕진 나루터에도 수령을 가늠할 없는 오래된 느티나무 그루가 있었습니다. 장정 여럿이 손을 잡아야 정도의 큰 느티나무 한그루가 서편 쪽에 있었습니다.

 우리 동네 느티나무는 누가 언제 태어났는지, 누가 언제 시집을 갔는지, 아랫동네 과부 아줌마와 윗동네 홀아비 아저씨가 언제 뽀뽀를 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아들, 잘되라고 비는 성황당이기도 했지요. 느티나무하면 저는 지금도 왠지 어머니 같은 나무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느티나무 그늘에는 평상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평상에는 낮잠 자는 손주에게 베개를 내어주시고 부채로 파리나 모기를 쫓아주시는 할머니가 한켠에 계시고 땅따먹기, 구슬치기, 탱고바리, 고무줄 놀이하는 꼬마 악당들도 느티나무 아래서 한낮을 보내는 곳이기도 합니다. 튼튼한 가지에는 누나, 고모들이 타는 그네도 달려있고요.

 

 이런 느티나무 아래 제일 재밋거리는 동네 어른들의 내장기입니다. 내장기는 원래 막상막하여야 성사가 됩니다. “점닝(점용) 막걸리 내기 장기 한판 둘겨!?" 갑빵(갑병) 아저씨가 점닝 아저씨한테 내기를 제안합니다. 그런다! 어제처럼 물려달라 하면 안뎌." 갑빵이 아저씨 말에 "! 내가 언제 그랬냐!?" 분의 타협이 이루어지면 점닝 아저씨와의 내기 장기가 시작됩니다. "일수불퇴여" 갑빵이 아저씨 말에 "너나 잘혀~~!” 분의 막걸리 장기내기는 시작이 됩니다. 주위에는 동네 어르신들의 호기심 어린 훈수가 펼쳐집니다. 어쩌다 잘못 장기에는 훈수를 두게 마련입니다. “말이 글루가면 안되지!", "포를 넘겨야지.”, “! 훈수하지 말어!" 한동안 옥신각신한 장기판이 드디어! "장이야~~! 장받어! 졌지! 외통수지! 졌지!?", " 수만 물르자.", "물르기 없었다고 했잖어." 고성이 오가면서 멱살잡이까지 이르게 되지요. 옥신각신하는 틈에 옆에서 보다 못한 다른 아저씨가 장기판을 뒤엎으면서 "! 느들은 맨날 장기 두면서 싸우냐? 이제 그만둬~~!" 싸움을 말리면서 성질 급한 아저씨가 "! 권식아 동식엄니네 가서 앞으로 막걸리 받어 와라", "~~! 알었슈~!" 저는 신이 나서 모장도래 동식이네로 달려갑니다. 동네 어른이나 애들이나 아들 이름이 동식이라서 동식엄니로 통하는 모장도래에 쪽진머리가 정갈하신 마음씨 고우신 아주머니입니다.

 여러 친구들 중에 유독 내게 심부름 시키시는 아저씨가 고마웠습니다. 이유는 오다가 막걸리를 맛볼 있기 때문입니다. 잰걸음으로 주막으로 갑니다. “동식엄니! 동춘 아저씨가 막걸리 되가져 오래요." 마루에 누워 계시던 아주머니는 느린 속도로 일어나시면서 "아니~! 동춘이는 외상값이 월만디 외상이냐! 권식아 외상이 많아서 막걸리 안 준다고 그래라." 하시면서도 동식엄니는 술독으로 걸음을 옮기고 계십니다. 손잡이가 삐삐선(군통신선)으로 감겨 있는 때가 꼬작꼬작 알루미늄 뚜껑도 없는 주전자에 막걸리를 넘치도록 가득 담아 주시면서 새카맣게 그을린 부엌 외상장부에 막대기로 작대기를 그립니다. “권식아! 이제 외상값 갚기 전에는 막걸리 안 준다고 일러라!", "알었슈.” 부엌 벽에는 한글을 모르는 동식엄니의 외상장부가 여러 개 있습니다. 동식엄니는 누구의 장부인지 알고 계십니다. 막걸리 되는 길게, 되는 짧게 그리는 방법으로 장부 관리를 하십니다. 현금으로 주시는 분들은 대개 외지인이고 동네 어른들은 보리나 쌀로 결제를 하십니다. 안주는 장광(장독대)에서 퍼온 고추장과 마늘 두어 , 시어빠진 열무김치가 전부입니다.

 나는 느티나무로 향하는 발걸음이 마냥 즐겁습니다. 주전자에서 넘치는 막걸리를 어느 정도 넘치지 않도록 마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릴 먹던 막걸리는 참 맛있었습니다. 막걸리 기운에 얼굴에 홍조를 띄곤 했습니다. 간식거리가 없던 나의 어린 시절에 막걸리는 요즘의 쥬스라고 해도 겁니다. 신나는 걸음으로 느티나무에 도착하면 다투던 어른들은 금세 서로 웃고 떠들면서 저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이구~~! 권식이 수고했다!", "~~! 한잔 받어! 이제 장기 두면서 싸우지 말어." 하시면서 느티나무의 일상이 시작됩니다.

 술은 일단 마시게 되면 항상 모자르게 되지요. 어르신들의 심부름은 차례 오가면서 느티나무 저편으로 하루의 추억이 일몰과 함께 서편으로 지네요. 멀리 낙화암 쪽으로~~!

그런데 추억의 느티나무가 1959 '사라호' 태풍으로 우리들의 추억을 송두리째 쓸어갔습니다. 너무 안타까운 추억입니다. 그리 아름답던 추억이 아직도 마음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글쓴이 전권식

 

사진 인터넷에서 위 수필과 관련 없음

*본 수필은 칠갑문화에 등재되었는데 작가의 허락을 받아 올린 것입니다.

글쓴이 전권식은 칠갑문화17년 알사탕의 추억, 18년 느티나무의 추억, 19년 왕진나루턱의 추억, 20년 서리의 추억, 21년 참게잡이의 추억 등이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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