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에 청산리 전투의 영웅 백야 김좌진 장군의 생가를 찾았다.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에 있으며
1989년 12월 29일 충청남도기념물 제76호로 지정된 현충시설이다.
이곳은 김좌진장군이 태어나 성장하던 곳이다.
1991년부터 이곳의 성역화사업이 추진되어
생가지와 문간채·사랑채가 복원되었으며 관리사 및 기념관까지 완공되어
충의정신(忠義精神)의 계승 발전을 위한 산 교육장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김좌진 장군의 생가지 근처 백야공원에 장군의 비(충남문화재자료 167)가 있으며,
장군의 묘(충남기념물 73)는 충남 보령시 청소면 재정리에 있다.
김좌진 장군의 생가 전경
백야 김좌진 장군은
청산리 전투의 영웅 백야 김좌진 장군은 일제 강점기 무장투쟁의 핵심적인 인물이다.
김좌진 장군은
1913년에는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에 가담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다가 체포되어
3년간 복역한 후 1917년 만주로 망명하였다. 이 후 13년간 평생을 항일전투에 몸 바쳤다.
3.1운동 후에는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의 총사령관이 되어 1,600여 명의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1920년 10월 20일부터 26일까지 있었던 청산리전투를 총지휘하여 일본군 제19ㆍ21사단을 상대로 격전을 벌여 3,300여 명의 일군을 섬멸시키는 독립군 사상 최대의 전과를 올렸다. 그 뒤 부대를 흑룡강 부근으로 이동,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을 결성하여 부총재를 지냈다.
1925년에는 영안(寧安)에서 신민부(新民府)를 조직하여 군사부위원장이 되었다. 또 성동사관학교(城東士官學校)를 세워 부교장을 지내면서 정예군 양성에 주력하였다.
1929년에는 한족연합회(韓族聯合會)를 조직하여 주석이 되어 황무지개간ㆍ문화계몽사업, 독립정신고취와 단결을 호소하였다.
그러던 중 고려공산청년회의 김일성(金一星)의 사주를 받은 박상실에게 암살당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重章)이 수여되었다.
- 인터넷에서 -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백야공원
공원을 지나 올라가면 사당인 백야사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청산리 전투 승전기념일에 맞춰
매년 10월 25일에 추모제를 지낸다고 한다.
김좌진 장군의 기념관 장군의 계몽정신과 독립운동 정신, 청산리 전투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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