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신익희선생 생가를 찾아서

큰종 2019. 6. 17. 19:20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서하리에 있는 신익희선생 생가를 찾았다. 

1992년 경기도기념물 제134호로 지정되었는데

신익희생가 또는  해공 신익희생가라고도 한다.

원래는 지금 위치에서 남동쪽으로 약 200m 지점에 있었으나,

1865(고종 2) 대홍수로 가옥 일부가 파손되어 현 위치로 옮겼단다.

그러나 건축물 대장에는 1925년에 건축된 것으로 기재되어 있고

유품으로는 목판, 고서, 휘호(친필), 놀이용 화살 등이 보존되어 있다. 

신익희선생 생가

만인이 우러른다(존경한다)는 뜻을 담은 만앙정(萬仰亭)

독립운동가인 심산 김창숙선생이 신익희선생을 기려 쓴 현판이다.

신익희생가 입구에서

사마루지는 노을에 해공선생을 만나다.’


생가 앞에 어록 담장


신익희[申翼熙] 1894~1956

8·15광복 전후 독립 운동가이면서 정치가로

상해 임시정부 내무부장, 국회의장,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등을 역임했다.

18926월 광주군 초월면 서하리에서 판서를 지낸 신단(申壇)의 다섯 아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임진왜란 때 탄금대 전투에서 순국한 신립(申砬) 장군의 10대손이다.

195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호남지방을 유세하러 가던 중 515일 뇌일혈로 사망하였고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신익희선생의 독립운동 표어

國家須完全獨立(국가수완전독립) 나라는 완전 독립되어야 하고

民族須澈底解放(민족수철저해방) 민족은 철저 해방되어야 하며

社會必須平等(사회필수평등) 사회는 필히 평등하여야 한다.



대통령출마의 변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출해내서

죽엄에서 되살어날 삶길을 뚫자

-신익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