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는 ‘가야본성 칼劒과 현鉉’을 봤다.
고령 대가야박물관, 왕릉전시관, 우륵기념관 등을 찾았던 기억을 더듬으면서......
그런데
평소에 생각했던 가야국과는 달리 새로움을 알게 되었다.
바로 ‘공존’의 가치다.
요즘 국회에서 끼리끼리의 공존을 위해 합의된 선거법은
공존이란 미명아래 누더기 ‘4+1 선거법’을 만든 것 같다.
4+1의 꼼수가 1의 묘수에 제 발등을 찍은 모양새가 되는 것 같은데
가야는 금관가야, 아라가야, 대가야, 소가야, 비화가야, 다라국 등 여러 나라가
서로의 다양성과 독자성을 인정하면서 공존했다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그런데 왜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지??
쇠자루 솥과 청동그릇, 굽다리접시(왼쪽 위 첫번째)
전시의 주제는 ‘가야본성 칼劒과 현鉉’인데
전시관 된 물품은 칼과 현 보다는 토기가 많고 현(鉉)은 별로인 것 같다.
내가 잘 못 관람했나?? 고령 우륵박물관에서는 수많은 가야금을 보았었는데......
파사석탑
이 석탑은 48년(수로왕 7)에 수로왕비 허황옥(許黃玉)이 서역 아유타국에서
바다를 건너올 때 파신(波神)의 노여움을 잠재우기 위해 싣고 왔다고
《삼국유사》 등 고서에 기록되어 있다.
경남 김해시 구산동에 있는 가야시대의 석탑.
한자음으로 파사석탑이고, 범어로는 바사석탑이라 하는데,
파사는 유체로서, 일체의 지혜가 현증 한다는 뜻이다.
-지식백과에서-
阿踰陁國 (아유타국)은 고대 가락국(駕洛國)의 수로왕(首露王)의 비(妃) 허황옥(許黃玉)의 모국(母國).
고대인도(印度)의 아요디아(Ayodhya) 왕국으로 추정된다.
가야 사람들은 바다를 끼고 여러 곳과 교류해서 다른 나라사람들이 많이 오가며 공존으로 살았고,
한자와 같은 다양한 문물을 받아 들여 썼단다.
거북 문양을 새긴 흙구슬
가야의 여러 토기
가야의 여러 토기
여러 가야국의 토기모양
다양성에는 가야의 토기에서 볼 수 있다.
굽다리접시, 짧은 목항아리, 그릇받침 등 여러 형태를 제각기 개성 있게 만들었단다.
집모양의 토기들
가야의 집과 창고를 표현한 토기인데 1번과 2번은 습기를 방지하기 위해 지은 창고
3번은 무덤처럼 만든 집이다
배모양의 그릇
투구, 목가리개, 갑옷,
가야가 520년간 존속할 수 있는 힘은 철을 다루는 기술이었다.
금동모관(1 ,2, 3번) 금귀걸이 (4.5번) 허리띠고리( 6번)
가야는 철을 바탕으로 칼과 갑옷을 만들어 수백 년간의 '공존'을 지켜왔단다.
가야무덤에서 나온 신라 토기
가야와 신라는 기본적으로 적대적 관계였지만
늘 그런 관계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 볼 수 있는 신라 토기이란다.
가야는 42년 부터 562년까지 520년 공존
가야의 고분에서는 중국을 비롯해 북방유목민, 왜, 신라, 백제, 고구려 등의
유물이 출토 된 것으로 보아 독자적으로 대외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본단다.
금관
가라국의 관은 6세기 이르러 관테에 풀과 꽃 모양의 세움 장식 형태를 갖추었다.
관에서 나온 금제장식
널에서 나온 꺽쇠와 널못
귀걸이
가야는 철다루는 기술을 바탕으로 칼과 갑옷을 만들어 수백 년간의 '공존'을 지켜왔다.
말을 탄 무사모양 뿔잔
말머리 가리개
철로 된 목가리개
철로된 화살촉
배모양의 토기
청동 칠두령(좌측)과 금동관(우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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